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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삼일절 영화 항거: 유관순 이야기 리뷰]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, 고아성배우와 조민호감독, 흑백 연출의 매력

 

 

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. 이것은 우리가 현재를 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더 나은 미래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죠. 그 소중한 거울은 바로, '과거'입니다. 아이러니하죠.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라는 것이 현재와 미래를 도와준다고요?

 

'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'는 말이 있죠. 인간사는 바퀴와 같아서 구체적인 형상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. 다만 그 바퀴의 색과 형상이 다를 뿐입니다. 지금 겪는 이 고난과 시련은 새로운 것이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그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. 

 

오늘은 시간은 거슬러 101년전, 1919년 3월 1일로 돌아갑니다. 영화 항거 : 유관순 이야기입니다. 

영화가 인상깊어 호다닥 그린 포스터 장면, 당당해보이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잘 담은 포스터라고 생각한다.

이 작품은 2시간 정도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흑백으로 연출한 영화입니다.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이사이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회상씬에서야 우리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채도가 살아나죠. 보통은 과거 회상의 장면에서 흑백, 현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컬러를 연출할텐데 이번 작품은 그 반대의 경우였습니다.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더 궁금했습니다. 

 

감옥에서의 유관순 이야기에 흑백연출을 한 이유가 뭘까. 영화를 보다보니 그 대답이 자연스럽게 들리더군요. 색에 집중할 관객의 그 에너지는 시간이 갈수록 다른 곳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합니다. 덕분에 극이 흐르고 유관순과 그 주변의 여성들과 눈을 맞추고, 그 내적인 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. 인터뷰를 보니 피나 고문에 대한 너무 적나라한 묘사를 하는 것보다 상상으로 대신하고자 했다는 감독의 말도 있네요. 공감합니다. 우리는 고문을 보려고 영화를 본 것이 아니니, 감독이 많이 순화한 것들도 눈에 보였지만, 영화화를 감안하고 봤습니다... (더하면 더했겠지요.)

 

사실 결말은 정해져있습니다. 우리, 아니 전국민이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. 그렇다면 이미 그 내용과 결론이 난 이 사건을 영화로 연출하고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고뇌가 필요했을 것입니다. 저는 영화를 보면서 그 포인트에 질문을 던져봤습니다. 

 

'유관순이 만세운동을 부르면서 독립을 외치자 서대문형무소에 갖히게 되고, 옥중 사망을 하였다.'라는 부분은 위인전기에도, 교과서에서도 알려진 '사실'입니다. 그 사실만 봐도 유관순 '열사'의 의지와 희생이 느껴집니다.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것만을 전달하지 않습니다. '유관순 개인'에 맞추어 그 내적인 고민 갈등, 겪을 아픔에 대해 인간적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만의 매력입니다. 

 

인간적으로 다가갔다는 점에서 '정춘영'이라는 인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. 밉지만 미워만 할 수 없는 인물인 정춘영. 분명 한국사적으로 몰매맞고 욕먹어야 마땅한 인물이죠.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. 하지만 정춘영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인간 가장 내면에 깃들어있는 탐욕과도 같습니다. 저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을 인간적으로 투영해서 영화 속 하나의 에피소드로 보여줄 뿐입니다. (자전거 타다가 조선인들에게 몰매맞을 뻔한 장면에서 갑자기 조선말을 쓰면서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사정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기회주의적인 면을 또 보게되죠. 그런 인간의 속성이 비단 그에게만 있을까요.)

 

저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. 도대체 이 일을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해 묻는 질문에, "그럼 누가합니까"라는 물음으로 현답을 내어놓는 유관순. 손톱이 빠지고 장기가 파열되는 신체적 고문은 이제 더이상 없지만,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불의와 정의롭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을 겪을 수 있는 경우는 아직도 수없이 많습니다.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의지만, 내가 먼저라는 대답이 나오기 힘든 요즘이라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입니다.